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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Perry

Neurodivergent, 나는 아직도 헷갈린다. 어떤 날은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처럼 보이다가도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이 밀려온다. 도대체 정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정상과 비정상, 그 경계의 어디쯤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일은, 때로는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불안한 곡예 같다.

어떤 날은 “이만큼이라도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마음이 올라오다가도 또 어떤 날은 “이렇게 해서 이 험한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불쑥 고개를 든다. 그리고 곧바로 흔들리는 마음을 잡으려 되새긴다 . ‘내가 왜 이러지… 본인이 더 힘든 아이에게.’

그러다 또 다른 생각이 불안과 함께 고개를 쳐들고 엄습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독립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흔들린다. 학교에서 전화가 올까 봐 긴장했다가, 남들처럼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하기도 하고 남들은 한 번도 걱정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들이, 우리 아이에게는 절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다가도 이런 것 까지 신경쓰고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 짜증이 올라오기도 하고

그래서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이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이일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아이는 느리지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충분히 자라지 않은, 미성숙한 전두엽을 가진 청소년. 특히 신경다양성을 가진 아이가 이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하는 짐은 생각보다 클거라 여겨진다.

나는 그 곁에서, 그 무게를 대신 짊어질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자 다짐해 본다.

요즘 들어 아이는 더 자주 자신과 다른 아이들을 비교한다. 그리고 그 비교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조용히, 그러나 깊게 흔들리고 있음이 아이의 삶 여기저기에서 우당탕탕 드러낸다.

아무리 따라가 보려 애써도 쉽게 좁혀지지 않는 “보통의 속도”와의 간격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하다. 그 불균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 채, 아이의 몸짓은 때로는 중독처럼, 때로는 강박처럼 어딘가로 새어 나온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여러 감정 사이에 갇힌다. 짜증, 걱정, 미안함, 슬픔… 이름 붙이기도 어려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어딘가 깊숙이 숨어 버리고, 대신 불안과 화가 더 자주 얼굴을 내민다.

“너는 너대로 아름답고 귀한 존재야.”

 그 말은 분명 진실일 텐데, 이상하게도 이론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찾으려고 해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 아이의 재능, 붙잡아 주고 싶은 자존감.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꺼내어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깨닫는다.

 나조차도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세상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욕심이라는 것을. 지독하게 깊이 박혀 있는 경쟁주의, 합리주의의 틀. 그 단단한 사고의 구조에 균열을 내면서 아이는 말한다.

 “나도 있는 그대로 소중한 사람이에요.”

나는 부끄럽게도 여전히 무언가를 놓지 못한 채 붙들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무엇을 포기해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질까. 포기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정해진 트랙이 아닌, 다른 트랙으로 걸어가야 하는 운명이라면…우리는 이미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 어두워 보이는 길. 그 길을 향해,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으로 나는 아이를 업고서라도 달려가야 하는 운명인 엄마다.

나는 그 사실 앞에서 두 주먹을 조용히 움켜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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